내 안의 가짜를 부수고 진짜 사용자를 만나는 방법
시작하며
9월 11일, 공식적으로 배민프레시는 배민찬으로 브랜드명을 바꿨습니다. 신선 커머스에서 반찬 플랫폼으로 변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많은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 반찬 플랫폼이란 무엇일까.
-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무엇이 중요한 걸까.
- 반찬 가게와 반찬 플랫폼 사이에서의 포지셔닝.
- 반찬을 직접 제조하고 새벽 배송도 하는 서비스로서의 고민.
다른 동료들과 배민찬, 서비스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업무 중 남는 시간을 활용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니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정기적으로 서비스에 대해 얘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변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를 모아 수다 모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모임 시작 후, 서비스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면서 느낀 부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우리들도 서비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 실제로 배민찬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어떤 사람들인지?
- 배민찬 앱을 어떻게 사용하고 왜 사용하는지에 대해 어렴풋한 이해밖에 없다.
모임 내에서도 저를 포함해 배민찬 서비스를 맡게 되면서 배민찬을 알게 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배민찬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막연히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지만 반대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서비스로 시작한 수다는 자연스럽게 사용자로 흘러갔고, 진짜 배민찬 사용자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사용자에 대해 어떻게 더 깊게 알 수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UX 스터디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UX 스터디 같은 수다 모임
제목이 끌려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1 란 책을 보게 됐습니다. 얇고 내용도 실용적인 거 같아서 스터디 할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수다 모임은 챕터를 하나 읽고 매주 한 번씩 점심시간에 모여 토론하는 스터디로 방향을 바꿨고 그래서 ‘수다 모임’에 ‘UX 스터디’를 붙여 UX 스터디 같은 수다 모임이 됐습니다.
줄여서 ‘사생하’라고 불렀습니다
UX에 대해서
사실 아직도 UX가 뭔지에 대해 정의해보라면 막연합니다. 하지만 스터디 전에 UI가 안 좋아 보이거나 사용하기 불편한 걸 UX가 좋지 않다고 말하던 것보다는 좀 더 깊은 이해가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한 UX란, 이해관계자 입장에서 사용자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과 사용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것이 복합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UX = 사용자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 + 사용자가 사용하면서 느끼는 것
그래서 대부분의 UX 방법론은 서비스에 대해 구체화하는 방법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에 대해 알아가는 방법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서비스를 평가 및 개선하는 방법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UX는 서비스 전체를 포괄하는 면도 있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UX가 좋다는 말은 “사용자를 깊게 이해하고 다른 서비스와 차별되는 특별한 가치를 잘 전달하는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용성 평가
처음에는 이게 정말 책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꼭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스터디를 해오면서 공감 가는 부분이 정말 많았으므로 사용성 평가 데모 영상을 같이 감상해봤습니다. 24분짜리 사용성 평가 데모 영상2이고, 내용은 사용자를 한 분 초대해 렌터카 웹사이트를 사용해보게끔 하는 겁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느낀 점은 한마디로 답답하다였습니다. 웹사이트는 왜 저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으며, 사용자는 왜 저렇게 잘 사용 못 하는지 답답했습니다.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의 관점 차이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사용성 평가에 대해 계속 강조하는 부분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고, 심지어 셀프 평가도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슬슬 스터디 하면서 알게 된 것을 기반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한번 실습해보자는 의견이 모였고 책에 나온 가이드를 따라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사용성 평가를 시작하기 전에 서비스에서 어떤 걸 평가하고 싶은지 먼저 정해야 합니다. 책에서 나온 가이드는 이렇습니다:
-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적어본다.
- 기능을 포함한 시나리오를 만든다.
- 시나리오를 평가해본다.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몇 가지 추린 후에, 그 기능이 포함된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를 사용성 평가할 때 사용성 평가 참가자에게 과제로 내드리는 겁니다.
1.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적어본다.
10분 정도 시간을 내서 배민찬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에 대해 각자 다섯 가지씩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전부 취합해서 세 가지를 뽑아보니 이렇게 나왔습니다:
- 간편한 주문
- 이벤트/기획전 전달
- 상품 탐색 및 추천
아무래도 커머스 서비스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결과였다고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합을 차근차근 맞춰본 게 계속 스터디를 진행하는 동기 부여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 기능을 포함한 시나리오를 만든다.
아무래도 주문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시나리오에 주문하는 과정까지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상품 탐색 및 추천 기능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마주할 만한 실제 상황을 가정해 시나리오를 작성 했습니다. 만들었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당신은 직장인이고 이번 주말에 집들이를 하려고 합니다. 예상 인원은 5명 정도 올 것 같습니다. 가격에 상관없이 메인 음식과 후식을 포함해서 집들이 준비를 위한 상품을 구매해보세요.
- 현재 배민찬에서 다양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기획전 중 마음에 드는 기획전에 참여해 상품을 구매해보세요.
- 당신은 직장인입니다. 다음 한 주간 팀원들과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다음 주 점심 식단을 구성 및 주문해보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나리오에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일단 해보는 데 의의를 두자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쫓으면서 계속 진행을 했습니다.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용성 평가에 참여한 참가자 입장에서 공감이 되는가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지정해드렸지만, 나중에는 시나리오 중 하나를 선택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3. 시나리오를 평가해본다.
사용성 평가에 대해 경험이 있던 분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1번 시나리오를 실제로 돌려보자는 생각으로 사내에 새로 오신 QA 담당자에게 사용성 평가 참여를 부탁드렸습니다. 진행 및 관찰을 하면서 느꼈던 건 “이거 조금 이상한데?” 였습니다. 당시 제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 서비스에서 가장 크고 잘 보이는 메인 배너 영역에 대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 거의 홈 또는 베스트의 특정 메뉴만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카테고리로 이동할 생각을 잘 안 하고, 햄버거 버튼은 존재 자체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 그 외에도 구현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하거나 이쯤에서 저 부분을 보고 알아채야 할 것 같은 부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첫 사용성 평가가 끝난 후, 평가를 진행하셨던 분들과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다들 저와 같이 의아해하는 부분들이 많았고 이거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사용성 평가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사용성 평가 진행
이 부분 또한 책에 자세한 가이드가 나와 있습니다. 가이드를 참고해 사용성 평가라는 게 뭐고, 어떻게 진행되고, 참가자가 아니라 배민찬 서비스에 대해 평가하려고 한다는 것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대본을 작성했습니다. 첫 사용성 평가 후 받은 피드백 중에 참가자 정면에 앉아서 쳐다보면 불편하다는 얘기가 있어 정면은 제외하고 자리 선정을 했고, 책에서는 혼자서 진행할 것을 권장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혼자서 진행하면서 기록을 동시에 하기가 쉽지 않아 2인 1조로 구성했습니다.
책에서 대본을 작성해서 그대로 읽으라고 가이드가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해보면 아무래도 처음 보는 분에게 사용성 평가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꽤 긴장됩니다. 실제로 기록자일 때 진행하시는 분을 보고 있으면 긴장해서 대사를 빠뜨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며 이런 실수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2인 1조로 구성해 한 명은 사용성 평가 진행, 다른 한 명은 기록을 맡았습니다.
두 번째 사용성 평가 이후, 가입을 위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었습니다. 결제를 위해 새로 가입을 하는 경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별로 어떤 부분을 주로 관찰하고 기록할지에 대해 기록자용 템플릿도 만들었습니다.
참가자는 따로 연령층이나 타겟을 고려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다양한 연령과 환경을 가진 분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11월 초부터 12월 중순까지 1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사용성 평가에 총 12명 참가해 주셨고, 이중 회사 내부 7명, 외부 5명이었습니다.
사용성 평가를 진행하면서 참가자의 음성을 녹음하고 앱 사용 화면을 녹화했습니다. 앱 화면 녹화를 위해 Appsee3를 사용했는데 트라이얼 기간이 만료돼 나중엔 음성만 녹음했습니다.
영상이 남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히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용성 평가는 1년 또는 큰 업데이트가 있을 때만 한 번씩 하는 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짧은 주기를 가지고 사용성 문제를 찾고, 찾은 부분을 고치고, 다시 사용성 평가를 진행하면서 다른 문제를 찾는 흐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비스는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어떻게 녹화해서 오랫동안 보관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주기적으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과는 단순히 녹화자료를 공유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직접 사용성 평가에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용성 평가 후에는 시간을 내주신 것과 사용성 평가에 참여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의미로 운영비를 모아 커피 쿠폰을 하나씩 드렸습니다.
사용성 평가 결과 정리
사용성 평가를 한 분 진행하고 나면 A4 1~2장 분량의 정리 결과와 약 40분 정도 녹음한 음성 파일이 남게 됩니다. 이렇게 12명 진행을 한 결과에 대해서 스터디 시간(점심시간을 이용한 1시간)에만 취합을 하기에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습니다. 머릿속에 사용성 평가를 했던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을 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주만 예외적으로 매일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툴로 정리를 하느냐도 고민이 많이 됐었는데 처음엔 마인드 맵 프로그램이나 개인 일정 관리를 위해 쓰고 있는 트렐로 그리고 팀원이 추천한 PostgreSQL(…)로 정리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아무래도 스터디 구성원이 다 같이 하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디자이너의 의견을 받아 보드에 포스트잇으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정리 방법은 포스트잇과 펜입니다.
사용성 평가 기록 정리는 화면 위주로 했습니다. 주로 특정 화면에서 참가자의 이야기와 행동을 듣고 관찰해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보드 세 개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된 보드의 크기가 꽤 크고 점심시간마다 스터디를 진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팀원들도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그래서 종종 물어보시면 이것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왜 이걸 하게 됐는지,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 공유를 했습니다.
이렇게 보드로 정리한 후에는 팀원뿐만 아니라 배민찬 부문 내의 다른 직군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초대해 같이 얘기를 해보는 시간도 가져봤습니다. 그 전에는 얼굴만 알고 가벼운 인사만 하는 분들이었지만 실제로 배민찬을 사용하면서 나온 피드백을 가지고 얘기를 진행해보니, 서로 서비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서로 업무 요청을 하는 사람, 요청을 받아 개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민찬 서비스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아가는 사람으로 서로 인식할 수 있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성 평가 결과 공유
스터디 구성원 외에 팀에 공유할 때는 원래 보드를 놓고 둘러앉아 얘기하는 식으로 진행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용성 평가 자체가 생소한 분들도 많았기 때문에 사용성 평가가 뭔지부터 차근차근 밟아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용성 평가 개념부터 결과까지 정리해 공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장표에 사용성 평가 참가자의 의견들을 다 담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장표를 만드는가도 도전적인 과제였습니다. 원래 12월 말에 공유하려고 했지만 결국 한 달 뒤인 1월 말에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배민찬 개발/기획팀 대상으로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위/아래 다른 체크무늬 남방입니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개발자가 이런 걸 하는 게 맞는지 동료 개발자가 어떻게 봐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공유할 때도 걱정이 많이 됐었는데 다행히 현장 분위기는 매우 좋았습니다. 그리고 질문도 많이 해주셔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안의 가짜를 부수고 진짜 사용자를 만나는 방법
사용자와의 접점에 있는 개발자로서, 자주 사용자 입장에서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내가 말하는 사용자가 진짜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되려면 우리가 기술을 공부하듯이 사용자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고 노력하고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 안에 있는 어쩌면 개인의 취향이나 욕망이 반영된 가짜 사용자를 부수고,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진짜 사용자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성 평가는 분명히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UX 스터디 같은 수다 모임의 구성원, 참여해주신 모든 참가자, 교정 및 편집을 도와주신 동료 종립님, 도연님 그리고 영감을 준 우에다 마리에, 젤다의 전설에 소소한 감사를 전합니다.
-
이 책은 UX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나온 책입니다. 다른 UX 책과는 다르게 UX에 대한 개념이나 설명을 장황하게 풀어놓지 않고, 저자의 많은 경험을 토대로 진짜 사용자가 하는 행동을 바탕으로 보편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점들을 담고 있습니다. 웹사이트 기반으로 작성된 책이지만 사용성을 개선하기 위한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개정판엔 모바일 앱 챕터도 추가됐습니다. ↩